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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테오 & 아일라

#01. 조우(遭遇) : 우연히 서로 만남.



어두운 밤이었다. 사람의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밤. 테오는 아브네아의 상점가 골목에 와 있었다. 은밀한 거래가 있다는 뜻이었다. 왕성의 충실한 재무 보좌관으로서 굳이 신분이 노출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을 감수할 이유는 없으므로 그가 직접 움직이는 일은 흔치 않았으나, 결국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은 중요한 거래가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자신의 눈 앞에 처참하게 널브러져 있는 병사들의 시체들을 내려다보며 테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 발 늦었다.

" 르윗, 주위를 정찰하고 와. "



테오는 어깨에 앉아있던 부엉이의 깃털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고, 금색의 눈을 느리게 깜빡이던 부엉이는 곧 날개를 펼쳐 캄캄한 하늘로 사라졌다. 거래자는 블라고 평원에 넓은 포도밭과 양조장을 두고 와인 사업을 하는 자였는데 벨바스트로 처음 와인을 수출하기 위하여 사업 자금의 명목으로 막대한 양의 골드를 필요로 한다고 했다. 그런데 듣자 하니 가까운 곳에 몇 대에 걸쳐 경쟁해온 또 다른 양조장이 있다고 했지. 아마 오늘의 거래를 방해한 것은 그 자들의 소행일 것이었다.



" 정말이지. 조심성이라고는 없군. "



시체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언뜻 살펴보니 모두 병사들 뿐인 것으로 보아 거래자는 다행히 목숨은 건진 모양이었다. 아니, 아마 이러한 위험을 미리 예견하고 사병들을 대동했을 테지. 테오는 깊은 생각에 잠겨 손가락으로 두어 번 입술을 톡톡 쳤다. 종종 무의식 중에 하는 일종의 버릇이었다.



바스락-



미약하지만 모래알이 구두의 밑창에 바스러지는 소리가 또렷이 들린 순간 테오는 반사적으로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마주치는 푸른 눈동자. 신분을 숨기기 위하여 갖춰 쓴 검은 안대가 무색하게 그 너머로 보이는 허리까지 물결치는 금색의 머리칼은 마치 아라크네의 황금 양털로 짠 실크 같았다. 자신보다 한참은 작은 체구의 앳되어 보이는 얼굴. 옆구리에 한가득 들고 있는 낡은 책들을 보아하니 아브네아의 고서를 취급하는 헌 책방에 들렸던 모양이었다. 이 먼 곳까지 책을 찾으러 왔다면 마법 혹은 연금술 중에 하나겠지. 그러나 어둠이 낮게 깔린 밤.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이와의 조우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모습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테오 쪽이었다. 이상함을 느꼈는지 머뭇거리던 그녀가 이 쪽으로 성큼 한 발자국을 내디뎠을 때 그제야 테오는 은신 기술을 써 몸을 숨긴 채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왜 제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는지. 보석처럼 형형이 빛나던 두 눈이 검은 천 너머의 자신을 꿰뚫는 것 같았다는 기분을 느끼면서.



 ̄ ̄ ̄



우연으로 시작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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